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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사회적이다. 사회적이라 함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트레이닝되고 습득됨을 뜻한다. 그래서 같은 현상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공포의 질감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이것이 같은 현상을 목도하는 개개인이 느끼게 되는 공포의 차이가 발생되는 원인이다. <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하다'고 말하는 점과 '별볼일 없다'고 말하는 것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악마를 보았다>는 철저히 여성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영화이다. 극중 살인자로 등장하는 최민식의 살인에는 아무런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여자를, 여학생을, 그리고 간호사를 아무런 이유없이 난도질을 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여성들이 향후 밤거리를 거닐며 느끼게 될 공포는 여기서 발생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별 볼일 없다'고 말하는, 이전의 공포영화들이 훨씬 잔인하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이러한 공포에 대한 예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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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예측 못하는 공포가 발생되는 이 '시대'에 있다. 예전에 세넷이 공포와 불안을 다가오는 무엇의 정체를 앎과 모름으로 나눈 적이 있는데, 어쨌든 둘 다 무언가가 오긴 온다는 것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서 무엇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무언가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를 예감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세상이다. 그럼에 있어서 공포나 불안이 사회적임은 분명한 듯 싶다. 예컨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격증 하나로 고소득이 보장되던 이들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참 힘들다. 분명 예전의 선배들과는 상황이 다름을 느끼지만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자신의 미래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영광에 근거한 인식을 갖는다. 예컨데 소비자의 계층화가 가져올, 그들의 내부의 계층화에 대한 예측 같은 것 말이다. 이번 지자체선거에서 민주당이 들고 나왔던 '무상급식'과 같은 이슈에 공감을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단일적 계층화가 가지고 있는 무리지움이 지속될 것이라는, 아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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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악마를 보았다를 우선 선택한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스타일리쉬한 김지운의 작품이라는 점과 최민식과 이병헌의 조합, 그리고 잔인하다는 소문.
김지운 감독의 작품에서 기대하게 되는 스타일이 있다.  <조용한 가족>에서부터 <반칙왕>, <장화홍련>, <달콤한 인생>에 이르기까지 한가지 장르로 매도하기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스타일이 있다. (다만 일각에서 말하는 시각적인 면은, 특히나 달콤한 인생에서 보여준 시각적인 매력은 김지운보다는 류성희의 매력이라고 판단하는 쪽이다) <악마를 보았다>도 마찬가지로 무언가 한가지 장르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든 면이 있다. 물론 '스릴러'라고 해버리면 된다. 근데 뭐랄까, 박찬욱의 복수3부작을 잘 썪어 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뭐 그랬다.
그리고 김지운다운 남성스러움도 여전하다. 김지운이 이병헌 카드를 자꾸 꺼내쓰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러한 자신의 스타일 탓이 아닐까도 싶구.
Posted by 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