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인가

서재/음악 2011/09/07 15:47



완벽한 논리구조로 설명되는 삶을 꿈꾸는 것도 아닌데, 당최 무엇이 납득을 하지 못하는지 잠을 자지 못한다.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야 정말 별볼일없을 진데, 뭐가 걱정되는지 새벽에 자꾸 깨어 난다.

사춘기 소년.

철이 든다, 는 말에 대해 세상에 길들여 진다, 와 동일하게 받아 들였던 것을 뜻하는 것인지,
과거형이 된 옛 이야기를 추억형으로 변환하기 위한 전제로써 필요했던 장치인지,
혹은.....
문득 문득 머리 속에 떠올랐다.

안정적으로 정착한다는 것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슬며시 고개를 쳐드는 것이 지쳐만 가는 일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겠지.


<사랑해사랑해> - 이상은


조심스럽게 배우던 기타를 반납했다.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거나, 전주만 지루하게 반복됨에도, 기타 튕기는 소리가 쏠쏠했지만
역시 나에게 교회오빠의 매력은 존재하지 않은듯 싶다.


세상에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이 가끔 재미없다.
게임이 성립되지 않는다.


게임을, 새로 시작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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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 앞에 버스가 줄줄이 도착한다. 생전 처음 볼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주먹밥을 손에 들고, 밤새 쏟아진다는 비를 대비한 우의를 걸쳐 입고 우산을 손에 들고, 거기에 가방까지...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이들이 하나 둘 버스에서 내려선다.

비는 거세지고 도로를 따라 짐은 무겁고. 그래도 지치지 않았던 것은 기대했던 무언가가 있었으리라. 그렇게
영도 다리를 지나는 행렬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이기를 바랐을까.

벽은 철통 같다. 주먹으로 치고 돌을 던져도 상처 하나 없다. 간간히 벽을 넘어 달려드는 무리들에 저항의 방법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력감은 절망감을 낳고 절망감은 만성화되어 간다.


쇠파이프, 각목, 죽봉이 발견되었다는 곳은 시위행렬이 들어가보지도 못한 곳이었다. 쇠파이프와 각목을 한쪽에 쌓아 놓았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대화를 하며 밤을 지샜을까. 아무런 사적이익도 없는, 친분도 없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 그곳에 모인 것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그들은 그날 담배를 입에 물고 히죽히죽 웃으며 누군가가 넘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행렬이 벽을 넘어 그곳에 이르렀다면 어찌됐을까.

 

시위, 저항, 연대 그리고 자유, 평등, 민주주의라는 언어들이 축제, 즐거움과 적절한 조합이 가능할까. 만일 그 벽에 스프레이로 벽화라도 그렸다면, 영화 황산벌에서처럼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였더라면, 그런 행위로 인해서 즐거웠다면, 그 즐거움에 만족할 수 있었을까. 밤새 비를 맞고 다음날의 뜨거운 햋빛에 온 몸이 새빨갛게 그을린 이들은, 불과 물을 오가는 쇠처럼 단단해 졌을까.


미싱은 돌고 돌고 또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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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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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씨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라는데, 심판대에 놓이는 위치에 익숙한 사람들의 일탈행위에서 오는 쾌감이 상당하다고들 한다. 경쟁이 일상이 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마추어들의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 주는 재미가 쏠쏠 한 듯 싶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을 하며 캐릭터를 키우는 심정의 연장선상에서 현대인들이 어떤 부분에서 갈증을 느끼는지를 잘 캐취한 한 것 같다.

다만, 역시나, 마치 온라인 게임과 같이, 현실과는 달리 엄정한 잣대(혹은 그 극도의 반대선상에서)를 가지고 도덕적 판단, 정의론에 입각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쉽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정사회, 정의론과 같은 언표가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했다는 반증이겠지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고 갈증은 증폭되는 듯 싶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하는 것은 연예인의 필수덕목처럼 되버린 듯 하달까.


주말 오후, 피곤에 지친 일상에 다소의 재미를 줄 수 있다면 더 무얼 바랄까, 라고 생각하며 티비를 보는 이들보다, 이제는 티비를 시청하는 것도 참 치열하게 하는구나 싶어진달까. 어쨌든 나는 가수다, 가 한달간의 재정비 시간을 갖고 나온다고 하는데, 아이돌 중에서도 참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뭐 결론은 아이유 대세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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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y's Anatomy Season 7, Episode 14
그레이아나토미를 즐겨보는데, 삽입곡 중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이 있어서 옮겨 놓는다.
국내에 정식발매가 안되었는지, 음원사이트에서는 도통 찾을 수 없었는데, 능력자 꼬미누나의 영능으로 기어코 찾아냈다는...^^;;
Posted by 햅.

we are wisconsin

서재 2011/03/03 10:13

현재 미국 위스콘신에서는 노동권을 수호하기 위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캡콜드님 블로그를 (http://capcold.net/blog/6852)링크를 시켜 놓을테니 궁금하시면 가서 보시면 될듯.

한편으로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신기한건 노동권, 노동자 등에 대한 인식이 상식적인 선에서 가능하다라는 점이고 또한 계급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동지애가 시민-노동자 간에 가능하다라는 점이다. 'we are wisconsin'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데에는 그만한 토대-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럽다, 신기하다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와 대비되는 지점에 대한 인식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이다.


캡콜드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이 재미있어 퍼왔다.

Copyleft 2011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We Are Wisconsin from Finn Ryan on Vimeo.



저는 소방관입니다. 저는 매디슨시 경찰관입니다. 저는 유치원교사입니다. 저는 작은 상점을 운영합니다. 저는 전신주 작업공입니다. 저는 중장비 기사죠. 저는 노조에 소속된 목수입니다.

*(여, 퇴역군인)
저는 28년간 육군 복무를 하고 퇴역했습니다. 오늘 여기 왜 있냐고요? 오늘 여기 있는 것은 이것이 바로 제가 군 복무를 한 의미, 즉 미국의 노동자층을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의 목소리이며, 그것이 바로 단체협상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협상권이 없으면 우리는 중간계급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절로 돌아가겠죠.

*(남, 소방관)
저희는 소방관들이 이번 법안에서 제외된 것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단체협상을 하고, 노조의 기본원칙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남, 은퇴교사)
저는 은퇴한 교사입니다. 주지사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협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임금 뿐이며, 어떤 다른 근무조건도 협상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매일 아침 일어나 원래 즐겼던 그 직업에 계속 만족할 수 있을까요? 만약 워커 주지사가 공정한 주지사라면, 저는 이런 것을 하고 싶습니다 이야기하고, 공개적으로 열어놓고, 사람들을 테이블에 불러서 협상을 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적 방식이죠. 하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해버린다면, 오늘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어떤 엉망진창 세상을 남겨놓는 것일까요? 어떻게 이런 것이 민주주의일까요?

*(여, 교사)
저는 제 직업을 사랑합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있고 싶지만, 위스콘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여기 있습니다. 저는 싱글맘입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집을 잃습니다. 제 월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504달러가 됩니다. 식료품점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그 돈이 있지만, 조만간 없을테니까요.

*(남, 경찰관)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시간동안 스스로를 보수라고 여겼고 공화당을 찍었습니다. 레이건부터 그랬죠. 그런데 스콧 워커가 공공 직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배신감을 느꼈고 제가 믿던 바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여기에 일을 위해 또는 시위를 하려고 매일 오면서,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았습니다. 제가 본 바는 평화 밖에 없습니다. 제가 본 바는 사람들이 서로 책임감 있는 성인들처럼 지내는 것입니다 – 친구이자 가족들이죠. 사람들이 분노에 폭력을 휘두른다느니 하는 소식도 들리지만 그런 것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경찰관으로서 그리고 여기 걸어 나오는 시민으로서 저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지사와 공화당은 그저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휘둘리지 않겠다고만 합니다. 제게 이것은 더 이상 공화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제 생각에는 저희들 중 많은 이들 – 그러니까 교도소직원, 경찰, 소방관 – 등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눈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여)
저는 모든 목소리가 협상테이블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최근 거리와 버스마다 걸려 있는, 서울시에서 입으로 주는 표창장과 대비되어 더.. 부럽다.
Posted by 햅.




Let me be clear. I understand very little, least of all the people closest to me.
<lie to me> season 3 중
Posted by 햅.


원래 한 사람의 글을 접하기 시작하면 연속해서 읽는 습관이 있는지라 문체나 시선에 익숙해져 어느 정도 질릴 때까지 읽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근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섭렵 중이다.


<올림픽의 몸값>을 읽고 나서 <꿈의 도시>를 읽는게 순서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누군가는 <남쪽으로 튀어라>부터 읽으라고 권해주기도 했다. 뭐 사상가도 아니고 굳이 생각의 흐름을 따라 독해할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생각에 걸리는대로 읽는 중이다.

<꿈의 도시>는 가상의 지방도시 유메노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메노시는 세개의 지역이 합쳐지면서 시로 승격된 곳이다. 소설 <꿈에 도시>는 유메노시의 '생활보호과 공무원', '도쿄의 대학으로 진핵하고자 하는 여고생',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 세일즈맨', '대형마트 보안요원', '지방 정치가' 등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딱 누군가가 주인공이라고 찝어 말할 수 없다. 유메노시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군상들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혹은 가상의 도시 유메노시가 혹은 자본주의사회가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나를 무척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군상들로 가득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두 개 밖에 읽지 않아서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자 한다. 그리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들의 바둥거림을 관망하게 만든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자 몸부림치는 인물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 그 테이블 위의 이미지 속에서 우리의 일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의 삶과 일상, 그리고 그의 소설 속에서 욕망화되어 묘사되는 삶과 일상은 동일하다고 하기에는 불경스럽지만 다르다고 하기에는 양심적으로 버겹다. 그들이 욕망하는 것과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유메노시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은 다양해 보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면면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독자들은 인물들의 욕망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유메노시에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바둥거린다. 그러나 내가 굳이 욕망이라고 표현하는데서 알수 있듯이 이들이 꿈꾸는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갖고자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쿠다 히데오는 담담하게 소설을 전개해나가면서, 정말 담담하게 욕망화시켜 버린다. 마치 우리에게 말하듯이, 결국 우리가 꿈꾸는 것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의 꿈은 결국 악몽일 뿐이라고.

충격적이라는 뒷표지의 문구와는 달리 라스트신의 강도는 그닥 강하지 않다. 그저, 그냥 슬프고 안쓰러울 뿐이다. 자본주의가 꿈꾸게 하는 현실이 결국 괴물로 치닫고 있을 뿐이라는, 소설이 시작하면서 끝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담담하게 주지시킨다. 우리의 삶에서 '꿈을 꾼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한다. 그리고 다시 절망하게 만든다.

가장 슬픈 건,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인간관계는 영원한 아군도, 동지도, 친구도 없다. 세상은 불신으로 가득 찬, 지옥과 다름 아닌 형상이다. 원조교제를 하고 인터넷을 통해 남의 이야기를 가쉽화하고 사기치기 위해 친절을 가장하고 남의 종교를 폄하하기 위해 중상모략하고 등등등. 그리고 소설과 너무나도 흡사한 우리의 일상은, 소설에서 느끼는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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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햅.
스포일러 다수 첨부~~~~~


1964년 10월 10일은 도쿄 올림픽 개막식이 있던 날이다. 도쿄 올림픽은 일본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상징적인 행사였다. 2차대전 패전국이었던, 만용의 결과로 온 몸으로 핵폭탄을 품어야 했던 일본은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 자신들의 경제성장을 올림픽을 계기로 과시하려 하였다. 즉 올림픽을 시점으로 주요 선진국 자격으로 국제 사회에 복귀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이를 위해 경기시설과 기타 제반시설(지하철, 모노레일, 신칸센, 고속도로, 호텔, 공항 등)이 건설되었다.

올림픽에 담긴 의미만큼 온 국민이 올림픽을 자랑스러워했으리라. 도쿄 올림픽의 성공을 원치 않는 일본인은 한 사람도 없으리라는 말이 나올만큼 말이다. 이 명제에 틈을 오쿠다 히데오는 후벼판다. 미래의 성공이 보장된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 시마자키 구니오는 춥고 척박한 북녘 아키타에서 가난한 농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도쿄대에 진학했지만 형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가 죽은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본주의의 황홀함 뒤에 숨겨진 어두운 면에 절규한다. 그리고 그 황홀함에 정점으로 상징되는 도쿄 올림픽에 테러를 계획한다.

미국을 위시한 세계와 벌인 무모한 전쟁의 흔적은 일본 곳곳에 새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덮고 새로 시작하자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지나쳤던 것일까. 경제성장을 통한 국력 회복에 대한 갈증은 어느 누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염원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그 염원을 해결하기 위해 쓰러져가는 뒷골목의 서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치안이 좋기로 알려진 일본.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국가 권력과 벌이는 싸움은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도쿄대생이 걷게 되는 험난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허탈함과 안타까움에 교차한다. 잘못된 사회구조에 반기를 든 일개 개인의 무력함은 텍스트를 읽는 독자에게 공을 넘긴다. 그래서 총을 맞고 테러에 실패하는 결말에 대해 '젠장 소설에서마저도....'라며 억울해진다.

시마자키 구니오는 등장하는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형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오롯이 받아 들인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반항하라고... 우리는 시마자키 구니오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주말에 <조선명탐정>을 보았다. 김명민이 정조 시대 때 탐정으로 등장하는데, 영화에서 천주쟁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김명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노비들이 도와주는데, 왜 자신을 도와주냐는 김명민의 물음에 '노비들을 감싸 안아주는 것은 당신 뿐이다'로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를 가리키며 '아씨가 저놈들이 성장했을 때는 다른 세상이 올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아씨와 김명민은 천주쟁이다.

단지 천주교를 믿는 이들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시대에 저항했던 이들을 저때는 '천주쟁이'라 불렀나보다 생각했다. 영화를 만든이도 김명민이 천주교에 가입하게 되는 계기를 보여주며 그렇게 의도한 듯 싶다. 시대의 부조리함에 저항하고 건강한 변화를 꿈꾸었던 이들을 '천주쟁이'라 불렀다. 이런 호명은 그때는 천주쟁이였고 언제적에는 빨갱이, 또 언제는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다. 뭐, 이외에도 많았겠지.

자 그렇다면 지금은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소설 내에서 빨갱이로 불리우는, 시마자키 구니오를 지금의 시대에서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Posted by 햅.

'너 많이 어두워졌다'
작년 한해를 잠시 접고 새해를 맡이하는 즈음에, 그 의미의 연장선에서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나라는 인간이 자꾸 외소해지고 있음에 대해 부정하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수긍해버렸던 모습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듯 자꾸 떠올라 못내 불편하다. 

절망을 나눈다. 요즘 느끼는 절망이다. '절망을 나눈다'라는 절망. 얼마전 술자리에서 오갔던 우리가 누굴 품고 누구와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문답에서 한발짝 물러나 관망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내가 누군가를 품을 기회'가 올 것인가라는 절망때문이다. 절망을 나눈다. 그로 인해서 다소 진통을 억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망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도 말할 수 있는 관계에 편안함을 느낀다.

말할 수 없는 장소의 불편함이란 여운을 남긴다. 더욱이 관계지향적이라는 나의 특성에 불편함을 느낀다.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관계의 균형이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때문이라면, 그 이후에 그 불편함을 되새김질 한다.

뭐 그렇다.
 


I just want to sit on my couch in my underwear, drink beer, and watch some movie. By myself. i just want one night off. Is that so much to 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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